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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책 정보

[표지]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저자카트린 레퀴예
역자김유경
출판사열린책들
출판연도2016-05-25
페이지192
ISBN9788932917696
가격13,000


가정/생활/요리 > 임신/출산/육아 > 육아법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기

 

 

책소개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카트린 레퀴예는 아이에게 과잉 자극을 쏟아 부어 오히려 학습 동기를 앗아 가는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고발하며, 외부에서 주어지는 과도한 자극은 아이가 본래 지니고 있는 내적 동기 유발 능력을 없애 버림으로써 성장의 싹을 잘라 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선물로 보기 때문에 모든 것에 놀라지만, 경이감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경이감이 없는 아이들, 즉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차단된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루해하며, 그 결과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과잉 자극은 아이의 경이감과 창의력, 상상력을 파괴한다. 

 

저자에 따르면, 배움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자극이 아니라 아이 자체에서 시작한다. 즉 <안에서 밖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지, <밖에서 안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다. 라틴어 <교육하다educar>는 라틴어 <Ex>와 <ducere>가 결합된 말로,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낸다는 뜻이다. 어원을 통해서도 배움의 욕구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레퀴예는 <자발적 노력이 결핍된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온갖 지식을 욱여넣는 <주입>을 멈추고, 아이들 안에서 최고의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경이감을 다시 발견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목차

 

추천사 

서문경이감을 잃어버린 아이들 

 

1부? 경이감이란 무엇인가 

1장엄마, 왜 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요? 

2장배움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3장과잉 자극의 결과 

4장기계론적 모델의 사회적 결과 

5장교육 vs 주입 

 

2부? 어떻게 경이감을 갖도록 교육할 것인가? 

6장내면의 자유: 통제된 혼란 속의 자유로운 놀이 

7장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수는 없다 

8장자연 

9장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라 

10장 과잉 교육: 베이비 아인슈타인 시대의 시대 

11장 유년기의 감소 

12장 침묵 

13장 틀에 박힌 일상에 생명력 불어넣기 

14장 신비감 

15장 아름다움 

16장 추악주의 

17장 문화의 역할 

 

결론 벽돌담인가, 아름다운 모자이크인가 

보이지 않는 시민 

 

주 | 참고 문헌 | 감사의 말

 

 

출판사 서평

 

배움의 욕구는 아이의 내면에서 시작된다!

스페인 부모와 교사들이 애독하는 육아 베스트셀러 

경이감은 알고 싶어 하는 욕구다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세상을 겉도는 듯한 자녀들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한탄하며 자문한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똑똑해져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세상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며 모든 일을 지루해한다. 당연히 배움에 대한 욕구 또한 없다. 왜 그런가? 그 답을 알 수만 있다면, 부모들은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저자 카트린 레퀴예는 이 책에서 부모들의 이 절망감으로 가득 찬 질문에 답한다. 

왜 아이들이 배움의 욕구를 잃게 되는 걸까? 신경과학, 소아과학, 심리학 등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과잉 자극]이 문제이며, [경이감을 느끼는 아이로 키우는 교육]이 그 해법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7세기 전에 [경이감은 알고 싶어 하는 욕구]라고 말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사라지지 않도록 아이들의 경이감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엄마, 왜 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요?] 같은 엉뚱한 질문은 그만두고 그럴 시간이 있으면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를 더 풀라고 다그친다.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이들의 이러한 질문은 딱히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현실 앞에서 감탄하는 방법이다.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어야 학습에 동기 부여가 된다. 그것은 아이의 밖이 아니라 이미 아이 안에 들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 원래 있던 경이감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경이감을 잃은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이들에게 경이감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며, 오늘날 교육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교육을 그 본질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스페인 아마존 베스트셀러. 

 

교육이란 아이의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카트린 레퀴예는 아이에게 과잉 자극을 쏟아 부어 오히려 학습 동기를 앗아 가는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고발하며, 외부에서 주어지는 과도한 자극은 아이가 본래 지니고 있는 내적 동기 유발 능력을 없애 버림으로써 성장의 싹을 잘라 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선물로 보기 때문에 모든 것에 놀라지만, 경이감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경이감이 없는 아이들, 즉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차단된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루해하며, 그 결과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과잉 자극은 아이의 경이감과 창의력, 상상력을 파괴한다. 

저자에 따르면, 배움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자극이 아니라 아이 자체에서 시작한다. 즉 [안에서 밖으로] 뻗어나가는 것이지, [밖에서 안으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다. 라틴어 [교육하다educar]는 라틴어 [Ex]와 [ducere]가 결합된 말로,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낸다는 뜻이다. 어원을 통해서도 배움의 욕구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레퀴예는 [자발적 노력이 결핍된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아니라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온갖 지식을 욱여넣는 [주입]을 멈추고, 아이들 안에서 최고의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알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경이감을 다시 발견하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A(성공)=X(일)+Y(놀이)+Z(침묵)

 

부모들도 오늘날의 교육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좀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더 일찍, 더 빨리, 더 잘.] 과도한 경쟁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른들은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이들의 머릿속에 뭐든 하루빨리 채워 넣으려 하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부모들은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도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아이들을 숨 가쁘게 돌아가는 어른들의 질서에 욱여넣는다. 그사이 너무나 소중한 아이의 유년기는 금세 지나가 버리고 만다. 

아이의 경이감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 내면의 자유를 존중하고 교육 과정에서 아이의 힘을 믿으며,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고 침묵과 자유로운 놀이를 즐기게 해주면 된다. 지식은 [밖에서 안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 [안에서 밖으로] 뻗어 나기는 것이다. 배움의 주인공은 교사가 아니라 아이다. 저자의 말대로 [어린이는 작고 미성숙한 어른이 아니다. 아이가 되는 것을 포기하기 전까지 아이는 여전히 아이이고, 그렇게 계속 아이로 남을 것이다]. 아이가 아이란 걸 인정할 때 경이감은 되살아나고, 온전한 유년 시절을 보내야 아이는 비로소 진정한 성인이 된다. 

A(성공)=X(일)+Y(놀이)+Z(침묵). 아인슈타인이 만든 성공의 공식이다. 자연 속에서 뛰놀며 신비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외부의 자극과 소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침묵 속에서 주변을 관찰하고 자기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볼 본연의 시간을 가진 아이라야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기회를 놓친 아이는 인생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를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순간에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모두 진품으로 태어나서 복제품으로 죽는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공식화한다. [아이 안에 이미 들어 있는 과학의 씨앗]은 [경이감]과 [아름다움], [진리]와 만나 [내면화된 학습]이 되고, [아이 안에 이미 들어 있는 미덕을 향하는 경향]은 [경이감]과 [아름다움], [선함]과 만나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한 내면화된 행동]이 된다. 우리는 [내면화된 학습]에서 오늘날 부모들이 자녀들이 그러기를 갈망하는 [자기 주도 학습]의 본질적인 형태를,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한 내면화된 행동]에서 훌륭한 시민 사회 구성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내용들은 어쩌면 이미 모든 부모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때 어린이였던 어른들은 오늘날 사회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 경쟁과 요구 사항들에 압도된 나머지 이러한 본능을 억누르며 그냥 이상일 뿐이라고 애써 외면한다. [우리는 모두 진품으로 태어나서 복제품으로 죽는다]는 카를 융의 말을 우리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은 갈수록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만큼 부모와 교사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한 블로거의 말마따나, 이 책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 누군가 [우리가 미친 거 아냐?]라고 소리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외침은 우리에게 교육의 본질과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본능을 일깨운다. 그렇다. 우리는 본래 자유로운 존재이고, 스스로 하는 자들이다.

 

 

책속으로

 

어떻게 하면 청소년이 될 아이가 꿈을 꾸고 사물들을 조용히 관찰하며,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고 주변의 것들을 알아가는 데 흥미를 느끼며 배우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 해결책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7세기 전에 [경이감은 알고 싶어 하는 욕구다]라고 한 말에 함축되어 있다. [유레카!] 그렇다.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경이로움을 보호해야 한다. --- 「서문」

 

경이감은 알고 싶어 하는 욕구다.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보면 존재 앞에서 처음 또는 다시금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지고, 그렇게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선물로 보기 때문에 모든 것에 놀라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형이상학적인 생각은 사물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우연한 존재다. 세상도 물론 그렇다. --- 「엄마, 왜 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요?」

 

시겔 박사가 말한 것처럼, 어린이에게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정상적인 환경]과 [최소한의 자극]이 필요하다. 우리가 작은 뇌 속의 신경 회로를 직접 그려 줄 필요는 없다. 아이는 내부의 원동력인 경이감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주인공은 교육 방법도, 자극의 양도, 교사도 아니다. 몬테소리가 말했듯이, 교육의 주인공은 바로 어린이다. --- 「과잉 자극의 결과」

 

발명과 발견이 먼저이고, 훈련과 학습은 나중 일이다. 아동 교육에서 이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카를 융이 [우리는 모두 진품으로 태어나서 복제품으로 죽는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 아이는 더도 덜도 말고 딱 그가 말한 대로 될 것이다. 즉 상황을 해결할 다른 방법을 상상해 보는 대신 간단히 스위치 누르는 법만을 배우게 될 것이다. --- 「내면의 자유」 

 

경이감을 죽이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원하는 즉시 다 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줘서 생기는 광적 소비주의는 아이의 경이감을 파괴한다. ---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수는 없다」

 

아이들은 현재를 아주 진하게 살아간다. 뭔가 의무를 다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시간표를 생각하지도, 다 한 일을 하나씩 지워 나가지도 않는다. 과거를 그리워하지도 않고 시간을 벌어둔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며, [아마도]라는 삶을 살지 않는다. 그저 현재를 즐길 뿐이다.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작가 카를로스 안드레우가 행복에 대해서 우리가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이란 어느 순간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사이에 있다. ---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라」 

 

아인슈타인은 [직관적 사고는 거룩한 신의 선물이고, 이성적 사고는 충실한 종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은 떠받들면서 정작 선물은 잊고 사는 사회를 만들어 버렸다]라고 말했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많은 것을 주입하기 위해 그들의 상상력과 경이감, 창의력을 죽인다. 그리고 아이의 본성을 거슬러 강요하는 이성적인 태도는, 차갑고 냉소적이며 계산적인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확실한 것은 이 모두가 경이감과 반대되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 「유년기의 감소」 - 11. , 109쪽.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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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2016-06-2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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